[폴리뉴스=윤청신 기자]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어촌편5’로 돌아온 배우 차승원이 빗속에서 만든 수제비로 시청자의 침샘을 자극하며 9%대 시청률로 출발했다.
2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 10분 방송한 '삼시세끼 어촌편5' 1회 시청률은 평균 9.3%(유료가구), 순간 최고 11.2%를 기록했다.
1일 오후 방송에서는 5년 만에 다시 섬 생활을 위해 떠나는 배우 유해진과 차승원, 손호준의 모습이 그려졌다.
배를 타고 전남 완도군 노화읍 소재 죽굴도로 간 세 사람은 제작진이 마련한 집을 확인한 뒤 첫끼를 준비했다.
세 사람은 너른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 안팎 탐색을 마치고 각자 일에 몰두했다. 김치 담그기에 나선 차승원, 아궁이에 불을 붙이는 유해진, 두 사람을 돕는 손호준은 공백이 무색할 만큼 완벽한 호흡을 선보였다.
거세진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자연스럽고 편안한 '케미'(케미스트리, 조화)를 보여준 세 사람,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다양하고 풍성한 식탁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이전에도 음식 솜씨를 자랑해온 차승원은 베테랑답게 도착하자마자 김치를 담궜다.
그는 비오는 날 어울리는 수제비를 첫끼로 준비했다. 육수가 팔팔 끓자, 잘 숙성된 수제비 반죽을 넣었다.
지켜보던 유해진과 손호준은 “진짜 맛있을 것 같다”, “비 오는 날 수제비는 죽이지”라며 군침을 삼켰다.
금방 완성된 차승원표 수제비에 둘은 감탄했다. 수제비와 함께 배추 겉절이를 먹고는 입을 모아 “너무 맛있다”며 행복해 했다.
유해진은 “수제비 오랜만에 먹어”라며 ‘폭풍 흡입’을 하더니 “더 먹어야겠다”라며 “이렇게 먹어보긴 또 처음이네”라고 감탄했다.
손호준도 “김치 진짜 맛있다”면서 한 그릇을 금방 비워 눈길을 끌었다.
방송후 차승원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1970년생으로 올해 나이 쉰 한살인 차승원은 경기 안양출신으로 모델로 활동하다 유해진과 1999년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으로 시작해 2001년 영화 《신라의 달밤》, 2002년 영화 《광복절 특사》, 2005년 영화 《혈의 누》, 2006년 영화 《국경의 남쪽》, 2007년 영화 《이장과 군수》, 2016년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호흡을 맞추며 콤비로 활약했다.
두 사람은 힘든 시절 처음 만나서 끈끈하게 우정을 이어왔으며, 차승원은 "나 외에 누군가가 잘 되는 건 싫지만, 유해진이 잘 되면 좋다."라고 발언하며 유해진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촬영지인 죽굴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읍에 딸린 섬으로 . 노화도(蘆花島)에서 서쪽으로 약 14㎞ 해상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에 장도·외모도·문어도 등의 작은 섬이 산재해 있다. 왕대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죽도라 부르다가 죽굴도로 개칭하였다.
1896년 완도군 설립 때 넙도면에 속하였다가 1916년 노화면 서리마을에 편입되었으며 1980년 노화면이 노화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노화읍 서리마을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른다. 섬의 형태는 촛대[燭臺] 모양이며, 남쪽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가까이에 높이 61.5m의 산이 있다. 북쪽 경사면인 해안에 취락이 형성되었는데 주민들이 대부분 노령이라 고기잡이와 김·미역·톳·파래 등의 해조류 채취로 생활한다.
죽굴도는 비록 3가구가 살지만 복지 혜택을 받게 되어 주 섬인 노화도에서 이곳 낙도 보조 항로가 생겨 뱃길이 쉬워졌다.
지금까지 낙도 보조 항로였던 이곳은 완도군 노화도의 이목항을 출발하여 넙도-서넙도-죽굴도-대제원도-대장구도-어룡도를 돌아오는 낙도 보조 항로인 신해2호가 있었다. 하지만 신해2호가 국고로 반납됨에 따라 대체 선박으로 카페리호를 투입하여 운항하기로 하고 운항 항로를 확보하게 됐다.
완도군은 접근하기 어려운 서넙도를 비롯한 4개 섬에 5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물양장을 설치하고 선박의 접근이 쉽게 이뤄지도록 해 놓았다. 그러나 먼 섬인 이곳 죽굴도와 대제원도·대장구도·어룡도 등 낙도 지역을 운항하는 여객선은 다니지 못하고 있었다. 노화 지역의 해조류 양식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전복 양식장과 김, 미역 양식의 확대로 항로 폭이 좁아진 까닭이었다.
죽굴도는 서쪽 해안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배를 대려는데 방파제 끝이 파도에 파손되어 있었다. 돌을 쌓고 그 위에 가늘게 시멘트를 깐 형태의 방파제인데 철부선이 닿을 수 있도록 45도 각도로 경사지게 하여 놓은 끝자락에 금이 가 있었다. 그래서 하선하는데 약간 힘들었다. 보수하거나 정비를 해야 하는데 그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방파제 끝에서 섬을 바라보면 경사진 낮은 곳에 집이 몇 채 있을 뿐 대부분 나무와 돌담에 가려 잘 구별할 수 없다. 특히 높은 돌담이 인상적이다. 그 뒤로 나지막한 숲이 펼쳐진다. 그만큼 이곳도 풍랑이 많은 지역인 듯싶기도 하다. 주변에는 조그마한 배 두 척이 있을 뿐이다.
도로라고 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낡은 길, 시멘트를 깐 길과 흙길 등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지만 대부분이 빈집이다. 사람이 사는 냄새가 나는 곳에 가니 개 한 마리가 요란스레 짖는다. ‘죽굴도길 3번’이다.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친인척 관계란다. 한 집 건너 시숙, 한 집 건너 시아주버니 등 할머니 대부터 이 섬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https://news.google.com/__i/rss/rd/articles/CBMiNWh0dHA6Ly93d3cucG9saW5ld3MuY28ua3IvbmV3cy9hcnRpY2xlLmh0bWw_bm89NDYxNTM40gEA?oc=5
2020-05-02 02:59:07Z
52782340470715
Tidak ada komentar:
Posting Komen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