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힘? 레전드 스타들의 저력?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뭔가’가 있다. 데뷔와 동시에 음원 차트를 ‘싹쓸이’해버린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혼성 그룹 싹쓰리(이효리·비·유재석) 이야기다. 가요·연예 대상을 섭렵한 초호화 캐스팅에 지상파 방송국의 전폭적 지원까지 더해졌으니, 당연한 성공일까? 일각의 비판처럼 싹쓰리는 ‘시장 생태계를 교란하는 무적의 포식자’인 것일까? 인터넷 게시판을 채운 댓글들은 조금 다른 의견을 보탠다. “대중이 원한 건 바로 이런 노래였다고요!” 싹쓰리의 흥행은 ‘대중이 원했지만 없었던’ 시장의 빈틈을 찾아낸 영리한 기획의 결과라는 말이다.
싹쓰리의 기세는 무서운 수준이다. 데뷔 싱글 ‘다시 여기 바닷가’는 발매 이틀째인 지난 19일부터 일주일간 멜론, 지니, 벅스를 비롯해 주요 음원 차트 1위를 굳건히 지켰다. 이후에는 싹쓰리의 새 싱글 ‘그 여름을 틀어줘’와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형국이다. 지난 25일 오후 8시에 공개된 공식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기준 20시간 만에 200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올렸다. 이날 이들이 데뷔 무대를 펼친 MBC <쇼! 음악중심>은 2.1%(이하 닐슨코리아 기준) 시청률을 올리며 올해 최고 성적을 냈다.
코로나19로 침체기를 맞았던 가요계에 ‘강펀치’를 날린 셈이다. ‘다시 여기 바닷가’ 발매 직후인 지난 18~19일 가온차트 상위 400위 음원의 전체 이용량을 분석한 결과, 전주 주말인 11~12일 대비 2.5%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400위 음원 이용량 중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와 ‘여름 안에서’의 점유율은 각각 3%. 2%대로 도합 약 5% 수준이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원은 “정상급 가수 두 팀이 컴백한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했다. 주말이 통상 음원 이용량이 감소하는 때임을 감안하면, 싹쓰리의 데뷔로 전체 이용량이 상승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싹쓰리의 흥행은 정상급 가수·제작진 섭외와 전폭적인 홍보가 가능한 방송의 힘이 있기에 가능했다. 가요계 일각에서 ‘불공정 경쟁’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중소 기획사 관계자는 “보통 가수들이 앨범 하나를 만드는 데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만큼 공을 들여 투자를 해도 인지도가 낮아 방송 노출 등 홍보가 충분히 되지 않으면 흥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싹쓰리처럼 방송의 인적·물적 인프라를 이용해 두 달 만에 뚝딱 만든 음반과 유통 시기가 맞물리면 홍보가 더욱 힘들다.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싹쓰리의 인기는 단지 ‘방송의 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앞서 최고 시청률 35.7%를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V조선의 <내일은 미스터트롯>도 발매한 음원들이 차트 정상을 섭렵한 전례는 없었다. 지난 25일 온라인 팬미팅에서 유두래곤은 싹쓰리의 음원 성적을 두고 “(<놀면 뭐하니?>) 시청률도 이렇게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농담 섞인 한탄을 하기도 했다. 싹쓰리 프로젝트 내내 <놀면 뭐하니?> 시청률은 8~10%대에 머물렀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지상파의 영향력이 줄어든 시대, 싹쓰리가 MBC 예능을 통해 콘텐츠 경쟁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했다고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싹쓰리의 진짜 저력은 시장의 빈틈을 노린 ‘쉬운 댄스 음악’에 있다. 전문가들은 가볍게 듣기 좋은 ‘보편적인 힘’을 지닌 댄스 음악의 부재가 싹쓰리를 음원 차트 정상에 올려놓은 주된 요인이 됐다고 분석한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음원 사이트를 주로 이용하는 20~49세 소비자들은 퍼포먼스를 우선시하는 아이돌 음악보다는 발라드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복고풍처럼 느껴지는 쉬운 멜로디의 댄스 음악 등 ‘듣는 음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4~5년 전까지만 해도 카라·소녀시대 등 걸그룹들이 국내 취향의 대중적 댄스 음악을 주로 선보였지만, K팝 시장의 세계적 확장으로 아이돌 음악의 전반적 경향이 해외 소비자 취향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변했다. 출퇴근길에 편하게 듣기 좋은, 국내 소비자 취향의 댄스 음악의 공백을 싹쓰리가 채워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음악 이용 실태조사’를 봐도 이 같은 공백은 확연하다. 지난해 한국인이 즐겨 듣는 음악 장르로 댄스(56.2%)가 발라드(78.5%)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가온차트가 발표한 2019년 음원 연간 차트를 보면 10위권 내 댄스곡은 청하의 ‘벌써 12시’가 유일했다.
싹쓰리의 흥행은 향후 가요계에 복고 취향의 가벼운 댄스 음악의 귀환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룹 코요태가 UP의 1997년 히트곡 ‘바다’를 리메이크해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른 것에 이어, 그룹 자자가 다음달 2일 ‘버스 안에서 2020’으로 컴백을 준비하고 있다. 이규탁 교수는 “인디 음악계에서 레트로의 흐름을 만들었던 기린·박문치 등 뮤지션들의 주류 차트에서의 활약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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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6 07:53: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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