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윤쇼. [유튜브 캡처]
“일상에서도 유머가 넘치는 분이셨어요. 영어를 완벽하게 하고 한국말도 되니까 해외 스타들이 한국에 오면 ‘자니 윤 쇼’ 출연하는 걸 최고로 알았죠.”
1989년 토크쇼 원조 프로에서 콤비로 활약
"고인이 원해서 내가 보조MC로" 인연 회고
"한국 엄숙주의 넘어선 혁신적 쇼 이끌어"
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84세로 타계한 자니 윤(Johnny Yune‧한국명 윤종승)을 보조해 1990년대 토크쇼 ‘자니윤 쇼’를 함께 했던 가수‧작가 조영남씨의 말이다. 그는 10일 오후 기자가 전화로 자니 윤의 별세 소식을 전해주자 “에휴…”라는 외마디 탄식으로 고인의 별세를 애도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애초 자니 윤을 먼저 알아본 게 조씨 본인이었다. 1980년대 미국에 방문해서 TV를 보는데 토크쇼에 출연하는 동양 남자가 그렇게 웃기더라는 것. “알고 보니 한국 교포 출신이라잖아요. 당시엔 동양 사람이 미국 메인 쇼에 나오는 게 드물었거든요. 그래서 LA 갔을 땐 연락해서 만나기도 했어요.” 당시 자니 윤은 NBC ‘자니 카슨 쇼’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보조 MC를 거친 뒤 자신의 이름을 딴 ‘자니 윤 스페셜쇼’를 진행하는 등 승승장구할 때였다.
'자니윤 쇼'에서 보조MC로 활약했던 가수 조영남씨. [중앙포토]
지난 8일(현지시간) 별세한 자니 윤(한국명 윤종승)이 1990년대 초 SBS로 옮겨가 진행했던 '자니 윤 이야기 쇼'에서도 보조MC로 함께 했던 가수 조영남(왼쪽). 가운데는 가수 노사연. 사진 SBS
“이남기 PD랑 저랑 올림픽공원에 가서 쇼하는 걸 보니 한국말도 잘 하더라고요. MC로 모시기로 했는데, 조건을 내세우길, 자신이 ‘자니 카슨 쇼’에서 담당했던 것 같이 보조MC가 필요하다 했어요. 예전에 만난 인연이 있어선지 저를 원한다고 했고, 이 PD가 그걸 수락해서 콤비 체제가 이뤄진 거죠.”
1989년 첫 전파를 탄 ‘자니윤 쇼’는 한국 토크쇼에선 드물었던 성적 농담, 정치 풍자 등을 과감하게 했다. 조씨는 이를 “한국 사회 엄숙주의를 넘어선, 혁신적 시도였다”고 회고했다.
“미국이 우리와 다른 게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가 통용되는데, 그런 선진국 문화를 먼저 끌어들인 분이죠. 옆에서 지켜보며 ‘유머 속에 사회 이슈를 저렇게 구사할 수 있구나’ 감탄했습니다.”
이후 조씨 본인도 ‘조영남 쇼’를 비롯한 다수 TV토크쇼와 방송 출연을 했지만 ‘자니윤 쇼’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돌아본다. “토크쇼란 일상의 대화를 카메라에 옮기는 것인데, 그 선을 아슬아슬 지키면서 매끄럽게 구사하는 유머를 따라 잡기 힘들었다”고 하면서다.
자니윤쇼 고별무대. [중앙포토]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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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0 08:18:56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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