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보고회’ 장소서 1년 만에 다시 간담회
오스카 캠페인 뒷 얘기 등 후일담 풀어놔
“거대 배급사 맞서 게릴라전처럼 캠페인”
아카데미는 로컬…의도된 도발·전략 아냐”
“생가복원·동상건립? 죽은 후에나” 쓴웃음
한국 주류 영화계가 도전적 영화 포용해야
기생충> 드라마판은 블랙코미디+범죄드라마
스코세이지 감독 “차기작 기다린다” 메시지
“기생충 영향 없이 하던대로 작업 계속”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수상 가능성은 크지 않아요. 제가 대학생 시절 영화 배울 때부터 존경하던 어마어마한 감독님들이 포진해 있는데, 그 틈바구니에 끼인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지난해 4월2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제작보고회에서 봉준호 감독이 칸국제영화제 수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했던 답이다. 그의 예상과 달리 <기생충>은 칸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이번엔 오스카 4관왕까지 올랐다. 봉 감독은 19일 같은 장소에 다시 섰다. 그는 “여기서 제작보고회 한 지 1년이 다 돼 간다. 그만큼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세계 이곳저곳 다니다 마침내 여기 다시 오게 돼 기쁘다”는 말로 기자회견의 문을 열었다.
봉 감독은 오스카 캠페인의 뒷이야기부터 들려줬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은 생긴 지 얼마 안된 중소 배급사다. 거대 스튜디오에 훨씬 못 미치는 예산으로 게릴라전처럼 뛰었다. 저와 송강호 선배가 코피 흘릴 일이 많았다. 600회 넘는 인터뷰, 100회 넘는 관객과의 대화,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반짝이는 아이디어, 네온·씨제이·바른손이앤에이·배우들의 팀워크로 물량 열세를 커버하며 열정으로 메꿨다.”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는 로컬 시상식”이라는 도발성 발언으로 화제를 모은 데 대해 “처음 캠페인을 하는데 무슨 도발씩이나 하겠나. 칸 등 국제영화제와 미국 중심의 아카데미를 비교하다 자연스럽게 나온 말인데, 그걸 미국 젊은 분들이 에스엔에스(SNS)에 많이 올렸다. 결코 전략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빈부격차 문제를 다룬 <기생충>이 세계적인 반응을 얻은 데 대해 봉 감독은 “<괴물> <설국열차>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다뤘지만, 이번 영화는 동시대 현실에 기반해 이웃에서 볼 법한 얘기여서 더 폭발력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사회의 빈부격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쓰라린 면을 관객들이 불편해할 거라는 두려움으로 스토리의 본질을 외면하거나 영화에 당의정을 입히고 싶진 않았다. 그걸 정면돌파하기 위해 만든 영화에 전세계 많은 관객들이 호응해줬다는 게 가장 기쁘다”고 덧붙였다.
오스카 수상 이후 정치권에서 봉 감독의 생가 복원, 동상 건립 같은 얘기들이 나오는 걸 두고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 얘기는 제가 죽은 후에 해주셨으며 좋겠다.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기사들을 보고 넘겼다. 딱히 할 말이 없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생충> 곽신애 대표 (오른쪽 끝) 봉준호 감독(오른쪽 두 번째)과 배우들. 연합뉴스
봉 감독은 자신보다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그는 “요즘 젊은 신인 감독들이 (나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나 <기생충>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투자가 이뤄지고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지 냉정히 생각해봤다”며 “한국 영화가 지난 2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동시에 젊은 감독들이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에는 더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2000년대 초반에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간 상호침투가 있었는데, 요즘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며 “활력을 되찾으려면 주류 영화 산업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적인 영화들을 껴안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최근 독립영화들을 보면 많은 재능이 꽃피고 있어 결국 산업과의 좋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기생충> 드라마와 차기작 등 앞으로의 계획도 설명했다. 미국 방송국 <에이치비오>(HBO)가 추진중인 <기생충> 드라마에 봉 감독은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기생충>이 지닌 동시대 빈부격차의 주제 의식을 블랙코미디와 범죄드라마 형식으로 더 깊게 파고들 것이다. 시즌제로 길게 가는 게 아니라 에이치비오 드라마 <체르노빌>처럼 5~6개 에피소드의 밀도 있는 시리즈를 만들려 한다. 아직은 애덤 맥케이 작가와 이야기 구조와 방향을 논의하는 단계다. 차근차근 준비해나가겠다.”
차기작으로는 한국어 영화와 영어 영화를 준비 중이다. 그는 “오늘 아침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쉬어라. 다만 조금만 쉬고 빨리 일해라. 차기작을 기다린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 준비하는 두편의 작품은 몇년 전부터 작업해온 것이다. <기생충>의 영향 없이 평소 하던 대로 작업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Let's block ads! (Why?)
https://news.google.com/__i/rss/rd/articles/CBMiPmh0dHA6Ly93d3cuaGFuaS5jby5rci9hcnRpL2N1bHR1cmUvY3VsdHVyZV9nZW5lcmFsLzkyODg0NC5odG1s0gEA?oc=5
2020-02-19 07:23:53Z
52782188866384
Tidak ada komentar:
Posting Komentar